동시성 집착 공상

 - 허황된 생각을 자주 하는 편입니다. 쓸데없는 공상 따위요. 지나가는 사람들의 대화를 슬쩍 엿듣고는 그 두 사람의 관계가 어떤 것일까 상상하며 혼자 키득키득하고는 혼자 머쓱해 하기도 하지요.


 - 이번 공상은 '동시성'에 관한 것입니다. 같은 시간이란 의미죠. 60억의 사람이 이 지구상에 살고 있다면, 최소한 두 사람은 정확히 같은 시간에 정확히 같은 행동을 하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어요. 평소에도 이런 동시성에 집착하고는 합니다. 예컨대, 같이 길을 걷는 사람과 정확히 같은 리듬으로 발걸음을 내딛으려 한다는 식으로요. 조금 위험해 보이는 집착이기도 하군요.



 - 이제는 사기꾼으로 밝혀진 슈퍼스타 초능력자 유리 겔러가 한국에 방문하여 쇼를 벌일 때였나, 아니면 다른 나라였나. 기억이 정확하진 않지만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당시는 한창 미국과 소련의 냉전과 핵위협으로 전 세계가 공포에 떨던 시절이었죠. 그가 말하길, 전 세계 사람들이 정확히 같은 시간에 나 유리 겔러와 같이 핵이 없어지길 간절히 빈다면, 그 마음의 힘은 염동력이 되어 핵무기를 사라지게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답니다. 허황되지만 어쩐지 그럴 수도 있겠다고 쉽게 수긍을 했던 기억이 나네요.


 - 또한, 이런 이야기를 듣기도 했어요. 중국이 마음만 먹는다면 세계를 멸망시킬 수 있다고요. 군사력이니 뭐니 그런 의미가 아니었습니다. 중국 15억 인민들이 마음만 합하면 가능한 일이라나. 10억이 동시에 점프를 해서 동시에 착지를 한다면 둘 중 하나의 일이 벌어진답니다. 지진으로 지구가 파괴되거나, 지구의 공전 궤도가 어긋나 빙하기가 올 거라고요. 아, 저는 역시 이 얘기도 쉽게 수긍을 해버렸어요.


 - 그렇다면, 최근 그런 동시성, 즉 같은 시간에 같은 행동을 했던 사건은 무엇이 있을까요? 일단 생각나는 건 2002년이 아닐까 합니다. 1차전인 폴란드전에서 황선홍이 첫 골을 성공시킨 순간이 바로 그 순간이에요. 물론 4800만이 동시에 '으아!'하고 소리를 지르진 않았을 겁니다. 전방에서 근무하시는 분들도 계시고 축구라면 치를 떠는 분들도 계시겠죠. 잠깐 딴 데 보다가 그 장면을 놓친 분들도 계실 거고요. 이렇게 따진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2000만 명 이상의 한국인이 동시에 소리를 지르진 않았을까요? 한국에서 벌어진 경기라 위성중계로 인한 지연중계현상도 거의 없었을 테니까요. 그 순간을 노려서 대략 1000m 상공에 기구하나를 띄운 뒤 그 소리를 지향성 마이크로 잡아내고 촬영했다면 꽤 재밌는 장면이 잡혔을 것 같아요.


 - 월드컵이 비일상적인 상황이라면, 일상적인 상황에서 가장 방대한 동시성은 언제 일어날까요? 놀랍게도 그 동시성은 택시 안에서 일어납니다. 얼마 전 택시를 탔는데, 오랜만에 젊고 유쾌한 기사분을 만나서 즐겁게 이야기하던 도중이었어요. 라디오 시보가 12시 종을 땡 침과 동시에 기사 아저씨가 얘기를 끊고 할증버튼을 누르면서 이렇게 말했어요, "전 국민이 함께하는 할증 타아임~" 아, 바로 이거였습니다.


 - 좀 집요하지만 통계청자료(www.kosis.kr)에서 택시가 몇 대인지 알아봤습니다. 2005년 현재 법인택시는 90,748대, 개인택시는 153,824대라더군요. 대한민국에는 대략 25만 대의 택시가 존재하는 겁니다. 대략 자정까지 운행하는 택시를 20만 대라고 한다면, 라디오를 듣지 않거나 시계가 잘못되어서 할증버튼을 누르지 못하는 기사분을 제외하면 아마도 15만 대, 그러니까 15만 명의 택시기사 아저씨가 동시에 할증버튼을 누르는 게 아닐까요? 매일 밤마다 동시에 15만 명이 할증버튼을 거의 동시에 누른다는 상상을 하니 꽤나 장관이군요. 그 소리만 합해도 어마어마할 거에요.


 - 조금 더 망상을 펼치자면, 한국과 같은 시간대를 쓰는 일본도 할증제도가 있다면(아마 있을 거라 생각해요) 그 숫자는 훨씬 늘어나지 않을까요? 한국과 비슷한 비율로 택시가 존재한다면, 대략 75만 대의 택시가 존재하고, 60만 명의 택시기사 아저씨가 동시에 할증버튼을 누르겠죠. (계산기로 계산했,,,) 원칙에 충실한 일본인이라면 그 정확성이 몹시 높아질 거에요. 90만 명이라. 아, 두근두근한 장면입니다.


 - 이밖에 또 어떤 동시성이 있을까요? 찾아보려면 수없이 많은 얘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 이야기들을 모두 모아서 한 권의 책으로 엮으면 심심풀이 시간 때우기 용 정도는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 이렇게 동시성에 집착하는 건 저뿐인가요? 아, 그리 여유가 있는 시기가 아닌데 이러고 있습니다. 이러고 있어요.

 

by believeinme | 2007/09/07 14:06 | + 중얼거리는 이야기 | 트랙백 | 덧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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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purplia at 2007/09/07 23:21
홍콩 택시에는 할증이 없었는데.. 일본엔 있을까?
하지만 너무 집요하다 빌리빈미님
Commented by moview at 2007/09/07 23:38
저랑도 하필 그곳에서, 찌찌뽕
Commented by 아인슈타인 at 2007/09/09 03:56
블로그에 나만의 공유,음악박스위젯를 달아보세요. 박스넷 한글판.. http://box.youfiles.net
Commented by believeinme at 2007/09/10 00:58
purplia.
홍콩 택시비는 한국 보다 싸던 기억이.
일본에서는 밤 늦게는 타봤지만 12시가 넘은 시간은 아니어서. (그래도 택시비는 후덜덜...;)

moview님.
찌찌뽕.

아인슈타인님.
죄송합니다만 제가 드릴 수 있는 건 무관심뿐이로군요.
Commented by 이비 at 2007/09/10 22:11
중국인민들의 점프로 지구가 간단히 파괴될 수 있을 것이라는 무시무시한 가설 때문에 한때 오싹했던 적이 있었지요. 나중에 곰곰히 생각해본 결과, 10억명의 사람의 20억개의 발이 정확히 한 지점에 동시에 떨어져야만 한다는 것을 깨닫고 심히 안심했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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